운허대종사 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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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 큰스님 · 1892 — 1980

독립운동가에서 수행자로,
다시 역경의 길로.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가로지른 한 수행자의 일생 — 그 길의 끝에서 한글대장경이 태어났습니다.

1892
출생
88
세수
59
법랍
37년
한글대장경 사업
생애

한 시대를 가로지른
수행자이자 학자의 일생.

젊은 시절
1892 — 1921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독립을 외치다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라를 잃은 시대 — 만주로 건너가 '이시열'이라는 이름으로 약 10년간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시대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릅니다.

봉선사 시절
1921 — 1945

출가, 그리고 봉선사에서의
수행과 강학

1921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해 법호 운허(耘虛)를 받습니다. 이후 경기 남양주 봉선사를 중심으로 수행하며, 1936년 봉선사 홍법강원을 열어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1945 — 1963

광복 후 교육과 강석을 오가며 —
광동학원과 전국의 강원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봉선사 인근에 광동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고, 전국 강원의 강주로 후학을 길렀습니다. 교육과 강학 — 두 길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역경 사업 시기
1964 — 1980

동국역경원 — 37년에 걸친
한글대장경 사업의 첫 걸음

1964년 동국역경원 초대 원장에 취임해 한글대장경 편찬 사업을 시작합니다. 1980년 봉선사에서 입적 — 세수 88, 법랍 59. 그가 시작한 사업은 2001년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매듭지어집니다.

"나라 섬기기와 부처 섬기기 —
일생을 가로지른 두 갈래는, 결국 우리말 경전이라는 한 결로 모였다."

운허대종사의 길을 기리며
주요 업적

여섯 글자로 남은 일생의 일.

한글대장경의 첫 걸음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세우고 초대 원장으로서 한문 대장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거대한 사업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광동학원 설립

1946년 광동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취임해, 지역과 불교계의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전국 강원의 강주

봉선사 홍법강원을 비롯해 통도사·해인사 등 전국의 강원에서 경전을 강의하며 후학을 길렀습니다.

항일 독립운동

만주에서 '이시열'이라는 이름으로 약 10년간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근대 불교사전 편찬

1961년 『불교사전』을 펴내 근대 한국 불교사전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경전 우리말 옮김

『우리말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평생 318권의 경전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운허대종사 1920년대 봉선사 제자들과 함께 구다경실, 1978 운허대종사
저술

손수 옮기고 엮은 책들.

1961『불교사전』근대 한국 불교사전의 효시
1963『우리말 팔만대장경』대장경의 정수를 우리말로 간추림
1964—한글대장경 역경동국역경원 — 318권의 우리말 옮김
1972『불교의 자비』대중을 위한 불교 교양서
연보

1892에서 2001까지, 한 길.

1892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다.
1910년대
만주로 건너가 '이시열'이라는 이름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
1921
금강산 유점사에서 출가 — 법호 운허(耘虛).
1936
봉선사 홍법강원 개설, 첫 강사로 부임.
1946
광동학교 설립 — 초대 교장 취임.
1961
『불교사전』 간행 — 근대 불교사전의 효시.
1964
동국역경원 개원, 초대 원장 취임. 한글대장경 사업 시작.
1980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서 입적 — 세수 88, 법랍 59.
2001
한글대장경 완간 — 운허 스님께서 시작한 37년의 사업이 매듭지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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